지식인의 책무_조국을 바라보며
1996년, 세계의 양심이라는 평을 받는 노암 촘스키(Noam Chomsky)는 "지식인의 책무"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중요한' 문제에 대해서 '적합한 대중'에게 '가능한 범위내에서' 진실을 찾아내 알리는 것]
나름대로 먹물을 먹었다고 거들먹대던 대학시절에 촘스키의 책을 읽으면서 고개를 주억거린 기억이 난다.
2022년, 조국사태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조국 전 장관은 여전히 정치적으로 빈번하게 의도적으로 소환되며, 그 가족에 대한 사회적 폐족처분 역시 그렇다.
나는 먹물 좀 먹은 지식인으로서, 내 양심이 불러일으킨 책임감에 떠밀려 굳이 이 사태에 대해 정리하고자 한다.
왜? 무엇때문에? 나는 법률을 공부한 사람도 아니고, 어떠한 영향력을 가진 명사도 아니기 때문에 내 머리통 속의 생각이 어떻든 아무도 관심이 없을 것이 분명함에도, 이 글을 쓰지않으면 견딜수 없는 양심통때문에! (분명히 수십년간 먹어온 먹물의 부작용이다.)
조국이 검찰을 건드렸다가 멸문지화를 입은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진실이다.
그럼에도 대중은 검찰정권을 선택했고, 여전히 조국은 공격받고 있다.
대중이 진실을 몰라서 그런가? 아니다!
대중은 지식인이 알려주지 않더라도 스마트폰을 통해 각자의 진실에 도달하고 있으며, 도달위치도 지식인들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대중은 조국이 억울하다는, 혹은 너무 심하게 당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돌을 던지거나 그냥 지켜보았다.
대역죄인을 능지처참할 때 살점 한점 한점 저미는 것을 구경하는 태도였다.
그가 아무리 억울하다고 외쳐도 망나니의 칼춤에 환호했다.
지식인들이 침묵했기 때문일까? 지식인의 책무를 방기했기 때문일까?
1996년에 촘스키가 지식인들의 책무를 말할 당시만해도, 지식인들은 믿고 있었다.
대중들이 진실을 알면 진실의 편에 설 것이라고, 진실이 승리하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같이 분노해주리라 믿었다.
그렇기에 지식인들은 진실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그것을 알릴 책무가 있었다.
그것은 지식인의 책무인 동시에 권리였다.
2022년, 이제 한국에서는 아무도 진실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언제부턴가 실체적 진실이라는 표현이 난무하더니, 모두들 넌덜머리가 난 모양이다.
그런 것에 좋아요와 구독, 알림신청을 누를 시간은 없는 것이다.
스팸신고 안하는 것만해도 많이 봐준 셈이다.
모두의 진실 보다는 내 지갑이 중요한 시대
그럼에도 나는 1996년의 지식인의 책무를 2022년에 수행하지 않으면 양심이 찔려 죽을 것 같다.
진실을 소리쳐 외치지 않으면 나도 공범이 된 것 같아 견딜 수가 없다.
조국이 무슨 잘못을 했는가? 그것은 대역죄이다.
나랏님에게 감히 칼을 겨누었으니 멸문지화를 입는 것이다.
나랏님이란 조국이 전공한 법, 그 법 위에 군림하는 엘리트들이다.
길 가는 사람들 모두 알고 있는 진실이다.
댓글공작원인 국정원 직원의 인터넷필명이 좌익효수였다.
그들의 뜻대로 조국은 효수되었다.
이래도 또 나서겠느냐고 지식인들에게 겁을 주는 것이다.
겁 먹은 나는, 2022년의 지식인임을 포기하며 이 글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