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한국인이다.
요 10년사이 가장 많이 들은 말 중 하나는 바로 이대로 가면 '한국인이 소멸한다'이다.
그러면서 합계출산율, 혼인률, 자살률 등등 온갓 '과학적 숫자'를 총동원하여 마치 엄청난 위기인 것처럼 호들갑이다.
과연 그렇다.
한국인은 소멸하는 중이다.
해결책은 뭔가?
아이를 많이 낳으면 한국인은 번영할 것인가? 아니다.
경제가 번영하고 수출이 잘되면 한국인은 번영할 것인가? 글쎄다.
그래서 뭐? 뭐가 한국인인가?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인가? 당신은 한국인인가?
한국인은 누구이며, 어디에서 왔으며, 무엇을 하고 있으며, 어디로 가는 사람들인가?
이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한국인을 네이버사전에서는 ' 한국 국적을 가졌거나 한민족의 혈통과 정신을 가진 사람'이라고 설명한다.
한국헌법에서는 '대한민국의 국민이 되는 요건은 법률로 정한다'라고 되어있다.
한국인이 소멸하는 것이 문제라면, 한국 국적을 얻는 법률을 바꿔서 국적 취득을 쉽게하면 되는가?
혈통을 퍼뜨리기 어렵다면 정신을 퍼뜨리면 되는가?
외국인의 귀화를 유인하거나, 한류문화를 전세계에 확산시키면 한국인은 소멸하지 않는가?
모두 무언가 알쏭달쏭하다.
지금부터 내가 하려는 이야기는 하나하나 따져야 하기때문에 길어진다.
머리가 아프다면 아래 첫 문장의 결론만 보고 흥미가 생기면 읽도록 하라.
어쨌든 그대와 나는 한글을 읽을 수 있는 공통점이 있으니, 잠시 시간을 쓴다고 한들 그렇게 나쁜 일은 아니다.
깃발이 있어야 한다.
한국인을 상징하는 깃발,그것은 한국인이 공유하는 가치고 정체성이다.
깃발만 치켜들고 있으면, 설사 나라가 망해도 다시 일어난다.
유대인을 보라. 종교라는 깃발을 들고 있으니 나라가 없이 2천년이 지나도 유대인은 이어진다.
종교가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일체감을 느낄 수 있는 깃발이 있어야 한다.
법으로 너와 내가 한국인으로 정해졌으니 일체감이 느껴지는가?
차라리 김치를 스팸에 싸서 밥을 먹는 사람이 더 일체감이 느껴지지만, 김치나 스팸을 깃발로 삼을 수는 없는 법이다.
그 깃발은 추구할 만한 가치가 있어야 한다.
부족사회에서는 토템이나 공통의 조상이면 충분하다.
우리가 부족국가라면, 단군의 자손이라는 깃발로 충분하다.
왕조국가라면 종묘사직으로 충분하다.
지금 우리는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국가에 살고 있지만, 이것이 한국인을 규정하는 가치인가?
여기까지 읽었다면, 뭐가 되었든 깃발이 필요하다는 점은 동의할 것이다.
그렇다면 무슨 깃발이어야 하는가?
태극기면 되지 않나?
남들과 비교하는 것이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일이다. (물론 이 특징도 깃발로는 실격이다.)
외국인과 비교해보자.
가장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의 깃발 일장기는 천황을 상징한다.
천황은 해뜨는 나라를 다스리고, 천황폐하의 신민이면 다 일본인이다.
북한 인공기는 주체사상, 김씨인민이면 다 북한인민이다.
중국 오성홍기는 공산주의와 중화사상이 섞여있는데, 하여간 중국땅에 살면 다 중국인이다.(그래서 중국인이 살면 중국땅이다.)
빨간 이웃들을 보니 좀 머리가 아프다.
이제 좀 파란 이웃들을 보자.
미국 성조기 50개의 별, 이건 여러 국가가 모임이라는 의미다.
그래서 미국인은 다양하다.
영국 유니언잭도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아일랜드의 연합왕국이라는 뜻이다.
미국은 각 주가 독립하지 않는 한, 영국은 왕실이 존재하는 한 미국인과 영국인은 사라지지 않는다.
프랑스 삼색기. 자유, 평등, 우애를 상징한다.
이 가치를 받아들이면 프랑스사람인가?
중요한 것이 빠졌다. 레볼루숑이다.
자유, 평등, 우애 때문에 레볼루숑을 해야 프랑스인이다.
내가 하고자하는 이야기가 뭔지 좀 감이 오는가?
그 나라 사람들이 공감하는 가치있는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것이 깃발이고 정체성이다.
이제 우리 태극기를 보자.
태극기 의미가 뭔지 정확히 아는 사람은 국민의 1%도 안 될 것이다.
음양오행과 주역의 이치를 담았기 때문에 동양철학에 정통한 사람이 아니면 설명하기 어렵다.
왜 이런 어려운 이치를 태극기에 담았을까?
태극기의 탄생은 외국과 조약체결을 앞두고 급하게 만들었다.
남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었으므로, '있어보이게' 만들었다.
외국인이 "오, 당신들 국기 멋지군요. 이게 무슨 뜻입니까?"라고 물을 때,
"에헴, 음양이 화합하고 생명이 순환하는 이치가 담겨있소."
이정도면 양코쟁이들 기를 죽이기 충분하지 않겠는가?
문제는 '있어보이는 것'과 실제 사람들이 '공유하는 가치'는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그 결과, 해방 후 한국인은 극심한 정체성의 혼란을 격었다.
유교질서가 무너지더니 천황폐하도 망했다.
해방이 되었는데 그놈의 이념 때문에 같은 민족끼리 서로 죽여서 국토가 폐허가 되었다.
그럼 나와 너를 연결해주는 그 무엇은 어디로 갔는가?
어쩌면 그 덕분에 누구보다 빠르게 자본주의를 받아들이고 지금에 이르렀다.
인간은 배부르면 더 상위의 욕구를 찾기 마련이다.
먹고는 살겠는데 그럼 우리는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가?
이웃과 왜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가?
'있어 보이는' 돈이 최고인가?
한국인은 지금 더 근본적인 욕구에 직면해 있는 것이다.
깃발에 자본주의 물이 드는 것은 전세계 공통이다.
모두가 숭배하는 종교도 없다.
그럼 한국인은 어떤 깃발을 들어야 하는가?
나는 답을 모른다. 알고 있다고 해도 개인은 의미가 없다.
내가 아는 확실한 사실은, 어떤 깃발이 새로 올라갈 때는 항상 피로 물든다는 것 뿐이다.
공업화 경제성장, 민주화 정치혁명 모두 피를 지불했다.
그래서 태극기가 의미가 있지만, 불행히도 한국인을 통합하지는 못했다.
젊은 세대에게는 공업화든 민주화든 벌써 옛날이야기일 뿐이다.
태극기가 지금 무엇을 상징하든,
피에 물든 태극기는 그 위기를 극복한 한국인을 상징할 것이고,
극복하는 과정에서 사람들을 한데 묶은 가치를 상징하게 될 것이다.
한국인이 소멸하지 않으려면,
피를 흘리더라도 깃발을 높이 들어야 한다.
그것이 실패하면, 한국인은 소멸한다.
고래로 소멸한 국가와 민족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