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편적 복지와 선별적 복지, 어느 쪽이 지속가능한가?
선거철이다. 그것도 대선.
선거에 이기기 위해 각 진영에서 공약들을 쏟아내고 있다.
이 공약들 중에서 가장 이슈가 되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복지 공약이다.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는 저소득층 위주의 선별적 복지를,
민주당 문재인 후보는 소득계층의 구분이 없는 보편적 복지를 내세우고 있다.
물론 보수언론들은 앞다투어 각종 칼럼, 사설, 기사를 통해
새누리당 후보의 선별적 복지론을 엄호하고 있다. 대략 핵심내용은 이렇다.
"모든 계층을 다 지원하기에는 재원이 모자라고 세금폭탄이 우려된다,
그러므로 가난한 사람부터(혹은 가난한 사람만) 지원하면 되지 부자까지 도와줄 필요가 없다"
대체로 이런 주장을 하며, 가장 핵심적인 근거로는 재원 문제로 인한 복지제도의 지속가능성을 들고 있다.
그리고 문재인 후보의 보편적 복지는 무책임한 포퓰리즘이라고 매도하고 있다.
과연 그럴법하다. 애초에 더 많은 복지혜택을 받고 싶지만 세금을 더 내기는 싫은
인간의 "합리적" 본성을 공격하고 있기 때문에 더 직관적인 설득력이 있다.
게다가 부자에 대한 반감을 이용해서 감정적인 분노도 이끌어 내고 있다.
이러한 주장이 옳다면 지속불가능한 공약을 내세우는 민주당 문재인 후보는 멍청이 아니면 사기꾼일 것이다.
그렇다면 진짜 "지속가능한" 복지제도는 선별적 복지인가 보편적 복지인가?
한국 보수파의 숫자계산으로는 선별적 복지가 지속가능하다.
그런데 실제 보편적 복지의 대명사로 알려진 북유럽의 복지제도는 꾸준히 지속되고 있다.
아니, 북유럽 사람들은 멍청이들이라 계속 사기를 당하는데도 모르고 있단 말인가?
북유럽에서 복지제도가 지속가능한 이유는 이렇다.
보편적 복지를 통해 저소득층 뿐 아니라 중산층이 복지제도의 혜택을 누리기 때문에
이들은 당연히 현재의 복지제도를 지지하며 다수를 차지한다.
따라서 선거에서 복지철폐를 주장하는 쪽이 힘을 못쓰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지속가능"하다.
선별적 복지제도는 중산층이 혜택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돈 내는 사람과 혜택받는 사람의 동질성이 약하고
돈 내는 사람 입장에서 남에게 주는 돈이라 매우 아깝다. 따라서 기회만 있으면 복지제도를 폐지하려고 한다.
대표적인 예로 미국의 AFDC제도는 가난한 흑인여성이 주로 혜택을 봤는데,
미국 중산층 백인남성의 강력한 공격으로 결국 폐지되었다.
북유럽식 복지는 단순히 돈을 뿌리는 식의 선심성 제도가 아니라
인간이면 누구나 겪는 위험(실업, 은퇴, 사고 등)에 대처하고,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서비스(교육, 의료 등)를 제공한다.
각 개인이 부담해야하는 위험이나 비용을 사회 전체가 나누어 부담하기 때문에
개인은 따로 대비할 필요가 줄어들어 가처분소득이 늘어난다.
그리고 전 국민을 포괄하는 대규모 복지서비스에 많은 인원이 고용되어 이들이 다시 세금을 낸다.
그리고 이 세금이 다시 복지에 쓰이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지속가능"하다.
보편적 복지의 핵심적인 수혜집단은 바로 여성이다.
출산 및 육아 부담이 복지제도(남녀출산휴가, 육아휴직, 이후의 교육 문제까지)를 통해
분산되는 북유럽의 합계출산율은 선진국 최고 수준으로 약 1.8명을 넘어선다.
복지재정을 부담할 후세대가 많으면 많을수록 그 제도가 지속가능한 것은 명명백백하다.
따라서 보편적 복지는 "사회적으로 지속가능"하다.
오늘날의 여성은 전통적인 역할인 아이돌봄, 가사노동 뿐 아니라 직장인 역할도 해야한다.
여성의 몸은 두개, 세개가 아니기 때문에 자연히 역할의 충돌이 일어난다.
그래서 아이를 안(못) 낳거나, 낳으면 직장에서 퇴직하는 식으로 타협하고 있다.
이래서는 가정과 직장 양쪽에서 다 손해를 본다.
그 결과가 우리나라 여성들의 출산 파업이다. 합계출산율이 약 1.2명으로 꼴지다.
물론 여기에는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남성들도 동참하고 있다.
선별적 복지제도는 눈앞의 지출을 줄일 수 있기 때문에
"재정의 단기 지속가능성"을 보장할 수는 있다.
그러나 단기재정안정을 위해서 미래세대의 숫자를 줄여,
부담의 전체크기는 줄이지만 1인당 부담은 늘린다.
그래서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지속불가능하다.
무엇보다도 선별적 복지의 근저에는 증세에 대한 거부감이 자리잡고 있다.
보편적 복지에는 필연적으로 증세가 따라올 수 밖에 없다.
그러므로 고소득층일수록 더 많은 세금을 부담하게 된다.
이것이 고소득층에게도 보편적 복지를 제공하는 이유다.
돈을 많이 냈는데 혜택을 못보면 억울하지 않겠는가?
물론 고소득층 입장에서는 안 내고 안 받는게 가장 좋다.
중산층 수준의 복지혜택은 고소득층 입맛에 맞지도 않는다.
특히 현재 기득권을 쥐고있는 똑똑한 보수층일수록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복지제도의 지속가능성의 핵심은 돈이 아니다. 바로 사람이다.
사람이 돈을 만든다. 안정된 소득이 있고 미래에 대한 불안이 없으면 사람은 사람을 낳는다.
그리고 그 어린아이들이 자라서 다시 노인을 부양한다.
이것이 지속가능한 사회다.
도대체 누가 진짜 멍청이고 사기꾼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