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기사단장 죽이기 감상

2018. 1. 29. 00:47

 작년 오월, 일본 치바현 츠다누마역 호텔에 묵을 때, 역의 쇼핑몰에서 서점에 들렀다. 반쯤 마음먹고 있었기에 별 다른 망설임 없이 "騎士団長殺し:기사단장죽이기"상/하권을 골랐다. 점원이 북커버를 씌워 줄까 물어보기에, 한국에서 책을 사는 것과 달리 종이커버를 씌운 책을 사게 되었다. 일본인은 남에게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꺼리는 경향이 강하다. 일본에서 지하철 등에서 책을 읽는 모습은 스마트폰을 만지는 모습 만큼이나 자주 보게 되지만, 그 책의 제목을 보기는 힘들다. 다들 커버로 표지를 숨기기 때문이다. 전철 바로 옆자리에 앉았던 140cm정도의 작은 체구의 앳된 중학생이 열심히 읽던 -시기적으로 중간고사 중이었을텐데도-  "西部戦線異常無し:서부전선 이상없음." 외에는 제목을 볼 수 없었다. 이 역시 표지를 본 것이 아니라 페이지의 머릿글로 나온 작은 글씨를 슬쩍 보았던 것이다. 그 외에 "화이트앨범2"를 찾아봤지만 역시 오프라인서점에서 사기는 너무 늦었는지 보이지 않았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쓴 책을 샀으니 키타하라 하루키가 나오는 책도 사고 싶었지만, 없는 것은 없는 것이니까.


 그렇게 2017년 5월에 산 두 권을 다 읽은 것이 2018년 1월이라니, 예전의 나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느긋함이었다. 12권짜리 장편소설도 밤을 세워가며 다 읽지 않으면 성에 차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왠지 조용한 방에서 읽고 싶지 않았다. 아마, 기왕에 북커버를 했으니 일본인들처럼 기차나 지하철, 버스에서 이동하는 동안 읽고 싶었던 것 같다. 그렇게 이동 중에 짬짬이 읽다보니 반년이 넘게 걸렸다. 옆에서 누가 뭘 읽고 있으면 자연스레 신경이 쓰여 뭘 보나 했을텐데, 북커버를 씌웠기에 더 궁금해졌을 사람들을 생각하면 충분히 에고는 충족된 것 같다. 


 기사단장 죽이기, 그것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중요한 무엇인가일 것이다. 주인공은 언젠가 자신의 기사단장 죽이기-흰 스바루 포레스트의 남자-를 다시 그릴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아마 화가로서 완성을 의미하는 것이리라. 아니, 유즈와 무로, 마리에와의 인연으로 이미 그의 기사단장 죽이기는, 이데아든 메타포든 벌써 완성된 것인지도 모른다. 더 그리든 그리지 않든 주인공이 원하는 것은 벌써 손에 넣었으니까.

 주도면밀하고 목표가 분명하면서 추진력이 뛰어난 멘시키, 그러나 그의 기사단장 죽이기는 바로 ~일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밸런스를 잡은 채 살아가는 것이다. 애매모호함을 유지하기 위해서 주도면밀한, 그러나 그 애매모호함을 가까이두고 싶어하는 멘시키. 그가 굳이 마리에의 출신을 확인하고자 하지 않은 것은 충분한 계산에 따른 결과일 것이다. 마리에가 그의 딸인지 확인하고자 했다면 충분히 할 수 있는 능력을 이 남자-멘시키는 가지고 있다. 그러나 해서 어쩔 것인가? 자신의 딸이라고 해도 마리에에게 그 사실을 가지고 함께 살자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자신의 딸이 아니라면 멘시키에게 남는 것은 없다. 마리에가 자신의 딸일지도 모르는 상태야말로, 멘시키에게 골디락스의 상태인 것이다.  

 마리에, 13세의 소녀의 기사단장 죽이기는 가슴이 부푸는 것일게다. 그리고 65C 정도가 되면, 다락방에서 부엉이를 보며 주인공에 기대 흐느끼던 소녀는, 아마 기사단장은 잊어버리고 숙녀가 될 것이다. 그렇지만 화장기 없는 13세 소녀의 아름다운 모습은, 주인공이 그린 미완의 초상화로 영원히 남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내 뇌리에도. 이 소설을 대표하는 이미지로 마리에의 흐느끼는 모습, 그리고 그 머리를 쓰다듬는 주인공의 모습이 기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