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카푸치노 소셜리즘
2002년 대선에서 룰라가 승리한 이유는 "붉은 좌파"에서 "부드러운 PT(PT light)"로 탈바꿈한 노동자당의 노선 변화가 주효했다. 리우 지구당 창당 멤버인 아르투르 오비누는 "1980년대 말부터 당내에서 '민주적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강력한 흐름이 생겼다. 민주주의는 더 이상 권력에 도달하는 수단이 아니라, 목표 그 자체로 받아들인다. 이것은 곧 권력 교체를 뜻했다."
2001년에 당대회에서 룰라를 위시한 중앙파는 사회민주주의 정당의 강령과 유사한 문건을 제출했고 당 문서에 '사회주의'에 대한 언급도 거의 사라져 버렸다.
1989년 사회주의권의 몰락 이후 계속 세를 잃어 온 급진파 세력은 이제 거의 소수파로 전락했다. 룰라는 '사회주의적 미래'란 유토피아를 버리고, 유럽형 사민주의 전략으로 선회했던 것이다.
- 대선 전략의 변화
"룰라가 당선되면 80만명의 기업인이 나라를 떠날 것", "룰라는 곧 디폴트"라는 말이 브라질 금융시장을 흔들었다. 룰라는 선거직전 부통령 후보로 섬유재벌이자 우익인 자유당의 정치인 알렝카르를 영입했다. 그는 신교도였기에, 브라질 주교단회의에서 반발했다. 당내 비판세력들도 지나친 실용주의적 태도라고 반발해다. 그러나 룰라는 "흑묘백묘론", "로미오와 줄리엣의 결혼" 이라며, "선반공(룰라)과 기업인이 함께 나라를 꾸려 갈 수 있음"을 보여줘야 한다고 역설했다. 인구의 10%인 신교도의 표도 중요하고, 무엇보다 시장과 재계의 반발을 잠재워야 했던 것이다.
- 이미지의 변신
두다 멘돈사라는 PR의 귀재를 영입했다. 그는 브라질 정가에서 우익 포퓰리스트로 이름높은 사람을 상파울루 시장에 당선시켜 정치광고업계의 총아가 된 사람이다. 이 영입으로 당 지도부는 마치 "호나우딩유가 축구 클럽을 바꾸고 욕을 얻어먹는 것처럼"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영입작전은 대성공이었다. 멘돈사는 우선 룰라의 턱수염을 밀고 아르마니 양복을 입게했다. 그가 만든 슬로건인 "귀여운 룰라, 평화와 사랑"(Lulinha, paz e amor)는 사람들에게 룰라를 친구로, 애인으로 받아들이도록 했다. 이것과 1980년대 노동자당의 슬로건 "3번을 찍으세요. 나머지는 모두 부르주아랍니다."와는 얼마나 큰 변화인가.
- "노동자당보다 위대한 룰라"
역시 가장 중요한 것은 룰라였다. 노조, 가톨릭교회, 좌파조직 등 이질적인 조직들이 22년간 단합할 수 있었던 것은 룰라의 리더십 덕분이었다. 좌파들은 끊임없이 자신의 정체성을 밝히기를 원했다. 공산주의자, 사회주의자, 아니면 사민주의자냐고? 룰라는 항상 "나는 금속노동자일 뿐입니다."라고 말했다.
1980년에 룰라는 이런말을 했다. "우리는 사회주의란 말을 쓰지 않습니다. 사회주의란 말은 우리에겐 아무 의미도 없어요. 우리 현실에 적합한 브라질 모델만 원할 뿐이지요. 선거 캠페인에서 레닌과 트로츠키의 논쟁에 관심을 가지는 노동자가 어디 있습니까...우리는 이런 일과는 정반대로 사람을 조직하고 그 다음 프로그램을 작성합니다. 이 사람들이 자신의 입맛에 맞는 음식을 선택할 권리를 가져야 합니다."
사회학자 레온시우 마르틴스 로드리게스는 노동자당을 "노동계급정당이 아닌 중간계급의 정당"으로 평가했고 "노동자당보다 더 위대한 룰라"라고 평했다.
출처 : <이성형, 2009, "대홍수-라틴아메리카, 신자유주의 20년의 경험", 그린비>의 p.123~126내용을 바탕으로 일부 발췌, 요약한 것임.
2002년 대선에서 룰라가 승리한 이유는 "붉은 좌파"에서 "부드러운 PT(PT light)"로 탈바꿈한 노동자당의 노선 변화가 주효했다. 리우 지구당 창당 멤버인 아르투르 오비누는 "1980년대 말부터 당내에서 '민주적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강력한 흐름이 생겼다. 민주주의는 더 이상 권력에 도달하는 수단이 아니라, 목표 그 자체로 받아들인다. 이것은 곧 권력 교체를 뜻했다."
2001년에 당대회에서 룰라를 위시한 중앙파는 사회민주주의 정당의 강령과 유사한 문건을 제출했고 당 문서에 '사회주의'에 대한 언급도 거의 사라져 버렸다.
1989년 사회주의권의 몰락 이후 계속 세를 잃어 온 급진파 세력은 이제 거의 소수파로 전락했다. 룰라는 '사회주의적 미래'란 유토피아를 버리고, 유럽형 사민주의 전략으로 선회했던 것이다.
- 대선 전략의 변화
"룰라가 당선되면 80만명의 기업인이 나라를 떠날 것", "룰라는 곧 디폴트"라는 말이 브라질 금융시장을 흔들었다. 룰라는 선거직전 부통령 후보로 섬유재벌이자 우익인 자유당의 정치인 알렝카르를 영입했다. 그는 신교도였기에, 브라질 주교단회의에서 반발했다. 당내 비판세력들도 지나친 실용주의적 태도라고 반발해다. 그러나 룰라는 "흑묘백묘론", "로미오와 줄리엣의 결혼" 이라며, "선반공(룰라)과 기업인이 함께 나라를 꾸려 갈 수 있음"을 보여줘야 한다고 역설했다. 인구의 10%인 신교도의 표도 중요하고, 무엇보다 시장과 재계의 반발을 잠재워야 했던 것이다.
- 이미지의 변신
두다 멘돈사라는 PR의 귀재를 영입했다. 그는 브라질 정가에서 우익 포퓰리스트로 이름높은 사람을 상파울루 시장에 당선시켜 정치광고업계의 총아가 된 사람이다. 이 영입으로 당 지도부는 마치 "호나우딩유가 축구 클럽을 바꾸고 욕을 얻어먹는 것처럼"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영입작전은 대성공이었다. 멘돈사는 우선 룰라의 턱수염을 밀고 아르마니 양복을 입게했다. 그가 만든 슬로건인 "귀여운 룰라, 평화와 사랑"(Lulinha, paz e amor)는 사람들에게 룰라를 친구로, 애인으로 받아들이도록 했다. 이것과 1980년대 노동자당의 슬로건 "3번을 찍으세요. 나머지는 모두 부르주아랍니다."와는 얼마나 큰 변화인가.
- "노동자당보다 위대한 룰라"
역시 가장 중요한 것은 룰라였다. 노조, 가톨릭교회, 좌파조직 등 이질적인 조직들이 22년간 단합할 수 있었던 것은 룰라의 리더십 덕분이었다. 좌파들은 끊임없이 자신의 정체성을 밝히기를 원했다. 공산주의자, 사회주의자, 아니면 사민주의자냐고? 룰라는 항상 "나는 금속노동자일 뿐입니다."라고 말했다.
1980년에 룰라는 이런말을 했다. "우리는 사회주의란 말을 쓰지 않습니다. 사회주의란 말은 우리에겐 아무 의미도 없어요. 우리 현실에 적합한 브라질 모델만 원할 뿐이지요. 선거 캠페인에서 레닌과 트로츠키의 논쟁에 관심을 가지는 노동자가 어디 있습니까...우리는 이런 일과는 정반대로 사람을 조직하고 그 다음 프로그램을 작성합니다. 이 사람들이 자신의 입맛에 맞는 음식을 선택할 권리를 가져야 합니다."
사회학자 레온시우 마르틴스 로드리게스는 노동자당을 "노동계급정당이 아닌 중간계급의 정당"으로 평가했고 "노동자당보다 더 위대한 룰라"라고 평했다.
출처 : <이성형, 2009, "대홍수-라틴아메리카, 신자유주의 20년의 경험", 그린비>의 p.123~126내용을 바탕으로 일부 발췌, 요약한 것임.
이 대목은 한국의 진보세력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해서 옮겨보았다. 기계에 손가락이 잘린, 가장 밑바닥에서 올라온 룰라도 저렇게 유연한 사고를 하는데, 한국의 진보세력들은 오히려 학문과 이념에서 출발해서 그런지 절대 자신의 주의주장에서 벗어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이는 정치가 아니고 운동으로 끝날 수 밖에 없으며 종국에는 나라와 그 자신 모두에게 피해를 줄 뿐이다. 특히 민주주의가 발전할수록 더욱 그렇다. 민주주의의 핵심은 서로 다른 가치관의 공존에 있으니까 말이다.
특히 외부인사영입이나 통합논의에 부정적인 경우가 많은데, 멘돈사의 경우처럼 유능한 인재중에는 다만 자신의 능력을 펼칠 수만 있다면 주의주장따위는 신경쓰지 않는 사람이 많다. 이런 사람들은 단지 누가 자신을 알아주느냐에 관심이 있으므로 유용하게 이용할 수 있는 사람들이고 능력면에서 대체로 탁월하다. 삼국지에 보면 원소휘하에서 조조를 비난하는 격문을 지은 진림이 조조에게 잡혀서 하는 말이 "화살은 시위에 올려지면 다만 날아갈 뿐"으로 누가 그 화살을 쏘느냐가 중요한 것이고, 화살은 단지 날카로운가 아닌가만 따지면 될 것이다. 개는 주인을 위해 짖는 법이니까 말이다. 조조는 진림을 다시 자신의 화살통에 넣고 유용하게 써먹었다.
한국 진보세력도 좀 더 카푸치노가 되길 바란다. 블랙커피는 폼은 날지 몰라도 널리 사랑받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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