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과 은

경제학 2026. 6. 11. 15:05 Posted by 闖

은. 실버.

 

전근대 시절 국제화폐 역할을 하던 귀금속이다.

 

특히 중국(명청대)은 세계의 은을 빨아들이는 곳으로 유명했는데, 남미 포토시, 일본 이와미에서 생산된 은은 돌고돌아 결국 중국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한 번 들어간 은은 다시는 나오지 않았다.

 

중국은 왜 은을 빨아들였는가?

 

은은 더 특별했다. 보관이 용이했고, 가치가 유지되었고, 무엇보다 은이 있어야 세금을 낼 수 있었다.(일조편법, 지정은제)

 

중국인들은 전세계의 은을 흡수한 뒤, 자기 집 어딘가에 묻었다. 이걸 저축이라고 해야할 지, 신앙이라고 해야할 지 모르겠다. 아무튼 들어온 은이 땅에 묻혀서 유통되지 않으니, 은은 언제나 부족했다. 

 

21세기 한국에서, 부동산의 지위는 은과 비슷한 것 같다.

 

돈을 모으면, 일단 부동산을 산다. 경제가 좋아지면, 부동산이 오른다. 부동산에 들어간 돈은, 땅에 묻힌 은과 같다. 돌지 않고, 그저 마음의 평안만 준다.

 

이러니 어떤 부동산 대책을 내 놓아도, 효과가 없다. 돈은 수단가치이지만, 은과 부동산은 절대가치이기 때문이다.

 

해결책은 부동산에 대한 신앙을 박살내는데 있다. 그러나 신앙을 버리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하는 것. 백중구십구는 반란이 일어날 것이다. 그러니 진퇴양난일 뿐이다.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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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에는 지역별 투표성향이 주로 보도되었다.

당시에는 각 지역을 대표하는 정당, 정치인(3김)이 정치의 중심이었기에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군부독재 세력의 집권/생존 이었다.

 

2026년 현재 성별/연령별 투표성향이 주로 발표된다.

왜? 특정 성별/연령을 대표하는 정치인이 정치의 중심인가? 있긴 하지만 주류는 아니다.

주류 정당인 민주당(중산층)과 국민의힘(상류층) 모두 계급정당이지 성별/연령을 대표하는 정당이 아니다.

 

진정 궁금하고 필요한 구분은 자산별/소득구간별 투표성향이다.

그러나 이것은 선거 출구조사에서 인터뷰하기에는 어려운 사항이다.

 

그래서 연령/성별 조사하는 것은 조사/방송편의주의라 할 수 있다.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

 

실체가 없던 구분을 수십년 하니, 실체가 생겼다.

 

연령별/성별 갈등이 심해졌다.

 

한 가족 내에서,

아버지와 아들, 남편과 아내의 정치적/경제적 이득이 다른가? 아니다.

가족의 이해관계는 같다. 왜냐하면 생계를 같이하기 때문이다.

 

이걸 억지로 구분하니, 정말 구분되어 버렸다.

 

나는 이것이 문제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보이는 것을 믿는다. 원래는 아무것도 아닌 문제가, 문제라고 언급되는 순간 문제가 된다.

 

되돌리기에 이미 늦었는가?

지금이라도 구분을 그만두어야 한다.

1%의 목소리를 10%, 20%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 소수를 무시해서도 안 되지만, 휩쓸려서도 안 되는 것이다.

 

출구조사의 대안은 무엇인가?

 

1. 사람 개개인을 대상으로 소득분위를 구분할 수는 없다.

 

2. 선거구별로는 소득추정이 가능하다. 대표적인 예가 강남 3구의 국민의힘 몰표다.

 

결론: 미디어, 여론조사업체에서는 소득분위(지역구별) 투표성향을 조사, 발표해야 한다.

 

[노스포] 공허한 십자가 감상

문학 2025. 8. 1. 20:38 Posted by 闖

사형제, 혹은 교도소에 가두는 징역형 등이 범죄자를 교화(혹은 갱생)시키지 못한다면 그것을 유지해야할까? 폐지해야할까?

 

이런 질문을 던지는 소설이다.

 

작가는 범죄자 개인의 관점에서 사건을 서술하면서,

 

(형벌은 공허한 십자가처럼 의미가 없기 때문에) 개인이 각자 다른 정답을 찾을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린 것 같다.

 

작가의 결론은 설득력이 있다.

 

하지만 사회시스템으로써 사형 등 처벌이 존재하는 이유는,

 

범인을 교화시키는 것보다 사회질서 유지에 있다고 봐야 한다.

 

(형사정책 등 범죄관련 학문에서는 마치 교화에 목표를 두는 것처럼 말하지만,

 

진실은 질서 유지다.)

 

즉, 범죄자를 처벌할 목적이 아니라, 범죄자는 처벌 받는다는 것을 대중에게 보여줄 목적이다.

 

그러므로 개인의 갱생여부는 작가의 주장처럼 개인에게 맡기고,

 

사회는 질서유지를 위해, 형벌을 가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교화를 명분으로 내세우는 것은 물론 양두구육이지만,

 

명분이 없으면 더 큰 문제이기 때문에 그렇게 믿는 척 할 따름이다.

 

아차, 소설은 재밌다. 일독을 권한다.

 

P.S. 나는 하나에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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