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들이 뻔뻔한 것이야 어제오늘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정도(度)가 있다.

상말로 빼도 박도 못하게 걸렸을 경우에는 최소한 사실관계는 인정하고 다른 변명을 하는 것이 상식이다.

증거가 뻔히 있는데 오리발을 내밀면 서로 싸우자는 것 밖에 안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정도껏을 모르는 사람이 사회 꼭대기에 올라앉으면서,

이런 최소한의 기본, 상식, 정도가 몽땅 사라졌다.

동영상이 있는데 바이든이 아니고 날리면이라고 우긴다거나,

명품쇼핑한 사진이 딱 찍혀서 외신에 보도가 되었는데 삐끼때문이라는 둥 안 샀다는 둥...

정말 저열하기 이를데 없다.

 

이러면 국민평균 수준도 내려간다.

아, 저렇게 해야 되는구나, 잘못해도 우기고 버티면 어떻게든 되는구나.

이게 뭐 단기적으로 큰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눈 앞의 면피를 하려고 하는 것이니까,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장기적으로 이런 풍조가 만연하면,

한국사회는 정글로 변한다.

상대를 도무지 믿을 수가 없고, 계약서를 써도 불리하면 안 썼다고 우길 것이다.

그럼 결국 한 손에 몽둥이를 들고 다른 손으로 악수할 수 밖에 없다.

이게 제대로 굴러가는 사회가 아니라는 건 두말하면 잔소리다.

 

신뢰비용이 증가하게 되는데, 무슨 소린고 하니,

서로가 신의성실의 원칙에 입각해 행동할 것이라는 가정이(계약서에 상투적으로 등장하는 문구다.)

서로가 단기적 이익에만 충실할 것이라는 가정으로 바뀌는 것이다.

죄수의 딜레마에서 서로가 서로를 못 믿게 되는 것과 유사하다.

그렇게 되면 서로 신뢰를 담보하기 위해 추가적인 장치가 필요해진다.

그만큼 신뢰비용(몽둥이값)이 발생하고 사회 전체의 이익은 감소한다.

 

뭐, 이미 늦었다. 소수가 저열하게 행동할 때는 그래도 자정작용이 있다.

그런데 이미 소수라고 하기엔 너무 많은 사람들이 그들을 따라 행동한다.

이것이 사회지도층의 힘이고, 소위 셀럽의 영향력인 것이다.

외눈박이 나라에는 양눈을 뜬 사람이 병신취급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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