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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10.20 시대적 과업, 지금 이 순간의 과업(시대정신?)

티비를 켰는데 진(秦)이 천하를 통일한 과정을 설명하는 역사물이 상영중이었다.

진시황 이전의 진왕들의 업적을 설명하면서 그 진왕들이 시대적 사명, 과업을 잘 수행하였기에

진시황이 10년만에 천하통일을 달성했다는 이야기였다.

 

역사의 흐름을 보노라면 그 과업을 달성하여 역사에 획을 긋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실패하여 그저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경우도 많았다.

진무왕이 감무와의 식양의 맹세를 잊어 의양을 얻지 못했더라면,

소양왕이 백기를 써서 장평대전 이기지 못했더라면,

여불위가 기화를 얻지 못했더라면, 

전국시대가 끝나고 중국이 통일되는 데 더 많은 시간이 걸렸을 것이고

심지어 진나라가 쇠망하고 다른 나라가 통일했을지도 모른다.

 

우리나라의 경우를 생각해보자.

해방 직후의 시대적 과업은 독립국가의 건설, 새로운 정부 수립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과업은 절반의 성공에 그쳤다.

독립 자체가 2차대전의 결과물이었기에, 미소에 의해 분단되었고

친일파는 그대로 살아남았다.

그리고 그 대가는 한국전쟁이라는 비극이었다.

 

한국전쟁이 끝나고 전후 세대의 시대적 과업은 먹고 사는 문제의 해결, 재건, 발전...

한마디로 공업화(산업화 , Industration)였다.

이 과업은 성공하였다. 해방 직후의 시대적 과업이 해결하지 못한 틈을 이용해 

살아남아 쿠데타에 성공한 박정희는 공업화라는 시대적 과업을 달성하였다.

 

박정희가 부하의 총에 맞아 죽고 난 후의 서울의 봄.

이 시대의 과업은 민주화였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등 수많은 피를 흘리고도 3당합당, DJP연합, 외환위기 등 힘든 과정을 거쳐

2003년 노무현의 당선으로 민주화의 정점을 찍었다.

모두들 이제 민주주의는 자연스러운 것으로 여겼다. 그렇게 생각했다.

 

진나라가 천하통일을 하고도 곧 초한전쟁의 난세가 왔듯이

한국에도 민주주의가 후퇴하는 시기가 시작되었다.

이는 금융위기로 촉발된 세계 신자유주의 자본주의 체제의 위기가 불러온

경제적 어려움이 원인이다. 경제적 어려움은 공업화의 신화, 박정희를 무덤에서 불러내었다.

성공한 공업화가 어찌보면 민주화를 후퇴시킨 것이다.

 

박정희처럼 검은 선글라스를 끼고 경부고속도로에 맞먹을 대운하를 파고자 했던 이명박,

그리고 지금은 박정희의 딸, 박근혜가 정권을 잡고 있다.

한국인들이 이명박, 박근혜에게 바라는 것은 민주화가 아닌,

그들 자신의 주머니를 풍요롭게 해줄 제2의 공업화이다.

 

제2의 공업화, 즉 두번째 경제적 발전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복지국가라는 단어로 압축되는 안정된 사회일 것이다.

실제로 민주화로 정치적 권리를 획득했다고 생각한 인민이

경제적 권리를 요구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그렇다면 박근혜 정부는, 아니 이 시대를 사는 우리는 이 시대적 과업을 달성할 수 있을까

독립정부 수립이라는 과업이 불완전했음에도 공업화에 성공한 것은

여러 요소가 결합된 것이라 짧게 설명하기는 어려우나,

냉전이라는 큰 시대적 흐름의 도움이 있었던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민주화가 후퇴하는 지금 시대에, 복지국가를 달성할 수 있을까

세계경제가 장기침체의 늪에 빠져있기에, 이 과업은 근년간에는 달성이 힘들 것이다.

 

앞선 세대의 과업이 실패한다고해서 꼭 뒷세대의 과업이 실패하는 것은 아니며

과업에도 정해진 순서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흐름은 있다. 역사의 흐름은 큰 틀에서는 앞으로 나아가는 흐름이다.

이 흐름을 타고 발전하는 민족이나 국가가 있는가 하면, 휩쓸려 사라지는 경우도 있다.

즉, 진나라가 6국을 멸하고 중국을 통일하지 못했다하더라도 중국의 지형이나

당시 중국문명의 발전단계 등을 고려했을 때 결국 하나로 통일 되었을 것이다.

항우가 이 흐름을 거꾸로 돌려보려 했지만, 유방의 한나라에 의해 다시 통일되었고

이 후 중국은 진나라 사람, 초나라 사람, 제나라 사람 등등이 아닌

한족을 중심으로 움직이게 되었다.

 

이것이 역사의 흐름이다.

진나라는 이 흐름을 잘 타서 승자가 되었고,

다른 6국도 역시 각기 기회가 있었으나 최종적으로는 패자가 되었다.

내가 속해 있는 사회가 휩쓸려 사라지지 않기를 바라며, 카산드라 노릇을 하기 싫어 이만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