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아버지를 조수석에 모시고 운전할 일이 있었다.
그날 따라 길도 막히고 졸음이 몰려왔다. 보통은 라디오를 크게 틀겠지만, 아버지는 라디오 소리를 싫어하셨다.
"아버지, 너무 잠이 오는데, 노래 한곡 해주실 수 있어요?"
아들의 갑작스런 요청에 아버지는 조금 당황하셨지만, 곧 흔쾌히 말씀하셨다.
"무슨 노래?"
"그 왜, 저 어릴 때 불러주신 것 있잖아요. 개똥벌레."
"험험..."
아버지는 잠시 목청을 가다듬으시곤, 곧 흥얼흥얼 시작하셨다.
"나나나 나나나난~"
잠시 후, 흥얼거림은 곧 노래가사로 바뀌었고, 후렴구에 접어들 때 쯤엔 박수도 치시면서 신나게 부르셨다.
"오, 좋습니다. 계속해 주세요."
"흠흠..."
자동차가 가다서다 꾸물거리는 것처럼, 아버지의 노래도 띄엄띄엄 했다.
"응? 그건 군가 아니에요?"
"어? 어. 아는 노래가 없어가-"
사실 우리 아버지는 음악에 관심이 없으시다. 두어곡 부르시고 나니, 어느새 레퍼토리가 떨어졌는지 생각나는 노래가 군대시절 배운 노래밖에 없으셨던 것.
하하, 참-
슬쩍 곁눈질을 해 보니, 꽤 즐겁게 부르고 계셨다.
노래는 감정의 표현인데, 그게 참...군가가 떠오른다니.
하긴, 당신께서 젊을 때는 지금처럼 어디서나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세상이 아니었다.
아버지 세대는 가부장적인 할아버지를 보고 자랐지만, 자식세대에게는 '아버지 노릇'만 했지, '아버지 대우'는 별로 못 받으신 세대다. 대가족에서 자랐고, 핵가족을 일구셨으며, 이제 1인가구를 자식으로 두고 있으니까.
아버지가 할아버지께 '졸리니까 노래한곡' 해달라고 할 수 있었을까?
버르장머리 없다고 불호령이 날아왔을 것.
내 머릿속에선 그런 생각이 스쳐지나가는데,
아버지의 군가는 기세를 더해가고 있었다.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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