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이규보의 슬견설

문학 2011. 8. 4. 13:15 Posted by 闖
 어떤 손(客)이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어제 저녁엔 아주 처참(悽慘)한 광경을 보았습니다. 어떤 불량한 사람이 큰 몽둥이로 돌아다니는 개를 쳐서 죽이는데, 보기에도 너무 참혹(慘酷)하여 실로 마음이 아파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제부터는 맹세코 개나 돼지의 고기를 먹지 않기로 했습니다."
이 말을 듣고,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어떤 사람이 불이 이글이글하는 화로(火爐)를 끼고 앉아서, 이를 잡아서 그 불 속에 넣어 태워 죽이는 것을 보고, 나는 마음이 아파서 다시는 이를 잡지 않기로 맹세했습니다."
손이 실망하는 듯한 표정으로,
"이는 미물(微物)이 아닙니까? 나는 덩그렇게 크고 육중한 짐승이 죽는 것을 보고 불쌍히 여겨서 한 말인데, 당신은 구태여 이를 예로 들어서 대꾸하니, 이는 필연(必然)코 나를 놀리는 것이 아닙니까?"
하고 대들었다. 
 나는 좀 구체적으로 설명할 필요를 느꼈다.
"무릇 피(血)와 기운(氣)이 있는 것은 사람으로부터 소, 말, 돼지, 양, 벌레, 개미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한결같이 살기를 원하고 죽기를 싫어하는 것입니다. 어찌 큰 놈만 죽기를 싫어하고, 작은 놈만 죽기를 좋아하겠습니까? 그런즉, 개와 이의 죽음은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예를 들어서 큰 놈과 작은 놈을 적절히 대조한 것이지, 당신을 놀리기 위해서 한 말은 아닙니다. 당신이 내 말을 믿지 못하겠으면 당신의 열 손가락을 깨물어 보십시오. 엄지손가락만이 아프고 그 나머지는 아프지 않습니까? 한 몸에 붙어 있는 큰 지절(支節)과 작은 부분이 골고루 피와 고기가 있으니, 그 아픔은 같은 것이 아니겠습니까? 하물며, 각기 기운과 숨을 받은 자로서 어찌 저 놈은 죽음을 싫어하고 이놈은 좋아할 턱이 있겠습니까? 당신은 물러가서 눈 감고 고요히 생각해 보십시오. 그리하여 달팽이의 뿔을 쇠뿔과 같이 보고, 메추리를 대붕(大鵬)과 동일시하도록 해 보십시오. 연후에 나는 당신과 함께 도(道)를 이야기하겠습니다."
라고 했다.
 
출처 :
http://www.seelotus.com/gojeon/gojeon/su-pil-bi-pyeong/seul-kyeon-seol.htm
 
 이 이야기는 각자의 가치관에 따라 수 많은 의견이 나올 수 있다. 생명은 종에 관계없이 소중하므로 인간이나 모기나 근본적으로는 별 다를 것이 없다는 의견, 좀 더 고등생물일수록 더 소중하므로 개와 모기는 다르다는 의견, 혹은 인간에게 가까운 동물인 개와 해충인 모기는 다르다는 인간중심적인 의견, 심지어 인간이든 모기든 맘대로 죽여도 된다는 의견까지 있을 수 있을 것이다.

 애초에 근본철학의 차이가 의견의 차이를 가져오므로 어느 것이 옳다 그르다 하기 어렵다. 나의 철학은 인간중심적이고 이성의 가치를 높게 평가한다. 그래서 인간이 꼭 필요하다면 다른 종을 살생하는 것은 괜찮다고 본다. 요컨대 인간 외의 종에 대해서는 생명권을 인간과 충돌하지 않는 한에서만 존중한다.

 사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는 내 생각은 진리라고 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이를 인정하지 않고 인간과 개와 모기의 가치를 동등하게 놓는다면 이 세상에서 인간으로 살아가기란 단 하루도 어려울 것이다. 걸을 때 마다 개미를 밟지는 않는지, 불을 피울 때 나방이 날아들지는 않을지, 게다가 먹을거리도 생명이 아닌 것이 없는데 결국 흙을 빵모양으로 빚어 먹어야한단 말인가? 인간은 지렁이가 아니기 때문에 그럴 수 없는 것이다. 인간이 살기 위해서 다른 종의 생명과 충돌한다면 인간이 우선이다.

 그렇다고 인간이 다른 인간을 죽이는 것까지 정당화해서는 곤란하다. 그렇게 된다면 서로 죽이고 잡아먹는 세상인데 이래서야 동물과 다를 것이 없다. 사실 인간도 동물이지만 그래도 이성을 가진 존재가 아닌가? 만약 다른 종의 동물이 이성을 가지고 인간과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면 그것은 인간과 대등한 존재로 봐야한다. 개가 주인을 보고 꼬리를 흔드는 것을 가지고 이성에 의한 의사소통이라고 할 수는 없다. 이는 이성의 교류가 아니라 감성의 교류니까...감성의 교류는 물분자와도 가능하다는 실험을 본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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