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빨리빨리 변해가는 요즘 세상이다. 서로 없이 죽고 못살더라도 헤어지고 며칠 지나지도 않아 새 연인과 다정한 사진이 sns를 장식하는 것이 흔한 시대에 화이트앨범2의 3명은 왜 이렇게 서로를 놓지 못하고 질질 끄는 것일까? 3명이 서로를 잊지 못하는 이유가 작품 내에 직간접적으로 제시되고 있는데, 어느 정도 납득이 가는 설정이고 바꿔 말하면 이 이유가 해결되면 새출발이 가능해진다고 할 수 있다.
세츠나는 보편적인 시각으로 보면 외관상 가장 이해가 가지 않는다. 주위 남성의 선망의 대상이며 숱한 구애를 받는데 자신을 배신한 하루키를 잊지 못한다. 작가는 이 이유를 청소년기의 트라우마를 제시하면서 설명한다. 중학시절 친구들에게 억울한 배신을 당한 기억 때문에 자신이 만든 3명의 세계를 부순 것이 자기자신이라는 죄책감과 섞여 하루키가 스스로 떠나기 전에는 자기가 먼저 배신할 수 없는 것이다. 하루키가 카즈사와 저지른 외도는 세츠나의 눈으로 볼 때 외도가 아니라 자기가 자초한 파탄이고 카즈사가 해외로 떠나므로써 무너진 애인이자 친우인 하루키를 배신할 수 없었던 것이다. 결국 세츠나가 이 트라우마에서 해방 되는 것은 세츠나트루와 같이 신뢰관계의 완전한 회복이 전제되어야 한다. 서브히로인 루트에서 세츠나가 물러나는 이유는 하루키가 확실한 배신을 해주었기 때문이고 -불사조는 설구워져서는 부활할 수 없다- 카즈사루트에서는 결국 잊지 못하고 3명의 관계회복을 시도하면서 끝이 난다.(세츠나에 있어서 카즈사에게 떠나는 하루키는 배신자 하루키가 아니란 점을 상기하자.)
카즈사가 하루키를 잊지 못하는 이유는 쉽게 눈치챌 수 있다. 하루키와 만나기 전까지 카즈사는 인생포기자였다. 인생의 설계자이자 이해자라고 생각했던 어머니에게 버림받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루키와 만남을 통해 카즈사는 다시 인생을 걸어갈 힘을 얻게 된다. 바로 하루키의 존재 그 자체이다. 카즈사의 인생은 하루키를 위해 살아가는 것으로 정해진 것이다. 피아노를 치는 것도 그 안에 있는 하루키를 꺼내기 위해서라고 작가는 설명한다. 하루키는 카즈사와의 관계를 어떤형태로든 완전히 끝장내려고 한 적은 없다. 세츠나트루에서조차 친우로서 관계는 부정하지 않는다. 이렇게 하루키가 카즈사를 버리지 않는 이상 카즈사 역시 하루키를 잊을 리 없다. 작가의 설정은 더욱 가혹해서 카즈사의 충견속성 때문에 버려지더라도 주인을 섬긴다고 한다.
하루키의 경우는 돌보기 좋아하고 잘못을 용납하지 못하는 성격의 영향이다. 돌보기 좋아하기 때문에 다메온나(일상생활파탄녀)인 카즈사를 버릴 수 없고, 잘못을 용납하지 못하기 때문에 세츠나를 배신한 자신을 용서할 수 없다. 서브히로인 결말에서 공통으로 나타나는 것이 돌보기 좋아하는 성격 때문에 서브히로인의 곁으로 떠난다. 즉, 돌봄의 대상이 카즈사에서 서브히로인으로 이동한 것이다. 서브히로인들은 각각 유능한 인재로 묘사되지만 정작 하루키가 매력을 느끼는 부분은 자신이 참견하지 않으면 무너질 것 같은 부분이다.
이상을 놓고 보면 일생 서로를 잊지 못하는 사람은 카즈사가 확실하다. 세츠나도 모든 관계에 무덤덤해지는 노년기가 오기 전에는 계속 괴로움을 품을 것이다. 하루키는 새로운 돌봄대상이 출현하면 카즈사를 떨치고 살아갈 것이다. 물론 그렇게 되려면 클로징챕터와 같이 세츠나에 의한 동요가 필수적이다. 그렇지 않다면 일생 카즈사를 품고 세츠나에 대한 죄책감과 더불어 대학시절의 하루키로 살아가게 될 것이다.
'문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의천도룡기 결말이 바뀐 이유 (1) | 2016.08.21 |
---|---|
영웅 소봉의 자결에 관하여 (0) | 2016.04.07 |
화이트앨범2 결말 (3) | 2015.07.17 |
[소설]가난한 사람들 (2) | 2014.03.04 |
[한시]양관삼첩 (0) | 2011.08.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