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몇년 전부터 독서에 대해서 자못 깨달았는데, 헛되이 그냥 읽기만 하는 것은 하루에 백번 천번을 읽어도 읽지 않은 것이다. 무릇 독서할 때 늘 도중에 한 글자라도 의미를 모르는 곳을 만나면 널리 살피고 연구해서 근본을 깨달아 글 전체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매일 이렇게 책을 읽으면, 한권을 읽더라도 수백권을 아울러 보는 것이다. 이렇게 읽어야 읽은 책의 의미와 이치를 명확히 알 수 있다.
만약 사기자객열전을 읽을 때 기조취도(旣祖就道 : 조를 마치고 길에 올랐다)라는 한 구절을 보고 "祖가 뭡니까?"하고 물으면, 선생님은 "전별할 때 지내는 제사다."라고 하실 것이다. "하필 할아버지 조를 쓰는 이유는 뭔가요?"라고 여쭈면, 잘 모르겠다고 하시겠지. 그 후 사전을 가지고 祖의 원래 의미를 살펴보고 다른 책의 풀이와 해석을 살펴, 뿌리를 캐고 지엽을 모은다. 또 통전, 통지, 통고 등의 책에서 조제(祖祭)를 지내는 예법을 찾아보고, 한데 모아 차례를 매겨 책을 만든다면 길이 남는 책이 될 것이다. 이렇게만 한다면 전에는 하나도 모르는 네가 이날부터는 조제의 내력을 훤히 꿰는 사람이되어, 비록 이름난 학자라도 조제에 대해서는 너와 다투지 못할 것이다. 이 어찌 큰 즐거움이 없겠느냐. 주자의 격물공부는 이와 같이 한 것 뿐이다. 오늘 한가지 물건에 대해서 이치를 캐고 내일 또 한가지 물건에 대해서 이치를 캐는 사람들 또한 이렇게 착수를 했다. 격(格)이라는 뜻은 가장 밑까지 완전히 다 알아낸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니, 가장 밑에까지 알아내지 못한다면 또한 아무런 보탬이 없는 것이다....(중략)....
초서(鈔書 : 일종의 스크랩)하는 방법은 반드시 먼저 자기의 뜻을 정해 만들 책의 규모와 편목을 세운 뒤에 그 책에서 간추려내야 한다. 만일 그 규모와 목차 외에도 꼭 뽑아야 할 것이 있을 때는 별도로 한 책을 만들어 좋은 것을 깨달을 때마다 기록해 넣어야만 도움을 받을 곳이 있게 된다. 고기 그물을 쳐 놓으면 기러기란 놈도 걸리기 마련인데 어찌 버리겠느냐
<정약용, 아들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
만약 사기자객열전을 읽을 때 기조취도(旣祖就道 : 조를 마치고 길에 올랐다)라는 한 구절을 보고 "祖가 뭡니까?"하고 물으면, 선생님은 "전별할 때 지내는 제사다."라고 하실 것이다. "하필 할아버지 조를 쓰는 이유는 뭔가요?"라고 여쭈면, 잘 모르겠다고 하시겠지. 그 후 사전을 가지고 祖의 원래 의미를 살펴보고 다른 책의 풀이와 해석을 살펴, 뿌리를 캐고 지엽을 모은다. 또 통전, 통지, 통고 등의 책에서 조제(祖祭)를 지내는 예법을 찾아보고, 한데 모아 차례를 매겨 책을 만든다면 길이 남는 책이 될 것이다. 이렇게만 한다면 전에는 하나도 모르는 네가 이날부터는 조제의 내력을 훤히 꿰는 사람이되어, 비록 이름난 학자라도 조제에 대해서는 너와 다투지 못할 것이다. 이 어찌 큰 즐거움이 없겠느냐. 주자의 격물공부는 이와 같이 한 것 뿐이다. 오늘 한가지 물건에 대해서 이치를 캐고 내일 또 한가지 물건에 대해서 이치를 캐는 사람들 또한 이렇게 착수를 했다. 격(格)이라는 뜻은 가장 밑까지 완전히 다 알아낸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니, 가장 밑에까지 알아내지 못한다면 또한 아무런 보탬이 없는 것이다....(중략)....
초서(鈔書 : 일종의 스크랩)하는 방법은 반드시 먼저 자기의 뜻을 정해 만들 책의 규모와 편목을 세운 뒤에 그 책에서 간추려내야 한다. 만일 그 규모와 목차 외에도 꼭 뽑아야 할 것이 있을 때는 별도로 한 책을 만들어 좋은 것을 깨달을 때마다 기록해 넣어야만 도움을 받을 곳이 있게 된다. 고기 그물을 쳐 놓으면 기러기란 놈도 걸리기 마련인데 어찌 버리겠느냐
<정약용, 아들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
1. 예전에 동아대 홍성민 교수의 강의를 들은 적이 있다. 멋진 외모를 가진 분으로 늘 산만하던 강의실을 단번에 휘어잡는 카리스마가 있었다. 홍성민 교수도 한가지 주제에 천착(穿鑿)하는 것이 공부하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그분은 권력이라는 단어 하나만 가지고 공부한다고 했다. 권력에 대해 논할 때는 그 분을 제외하고는 말이 안 될 것이다. 아아, 나는 이리저리 기웃거리기만 하고 깊은 공부를 못한 것은 아닌지 스스로 염려스럽다.
2. 선생님의 중요한 일과도 늘 신문스크랩이었다. 나는 옆에서 늘 보면서 아, 천재학자는 우연이 아니고 저런 습관의 도움이 있었구나 하고 느꼈다. 그러나 내 본성이 게으르고 세밀하지 못해 하루하루 미루기만 했으니 역시 불초제자라 할 만하다. 정약용의 글을 보고는 선생님의 방법과 꼭 같다는 것을 알고 뛰어난 두 학자도 저렇게 하는데 나도 꼭 따라 배워야겠다고 생각하고 이 블로그에 글을 써두게 되었다. 그동안 알면서도 실천하지 못했으니 영험없는 귀신하고 다를게 없었다. 순자도 말하기를 적미(積微), 즉 조금씩이라도 매일 쌓아두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하루하루 쌓아가면 언젠가는 이루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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