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 빨리가야하나 늦게가야하나

기타 2013. 11. 21. 13:56 Posted by 闖

20대 초반의 영기발랄한 청년들이 자주 듣는 말이 있다.

"너 군대 안가냐? 언제가냐?"

주로 마땅히 할 말이 없을 때 나오는 화젯거리로써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그래서 어쩌라고? 대신 가줄꺼니?" 라고 쏘아붙이고 싶은 질문이기도 하다.


으레 따라나오는 덕담(?)아닌 덕담은 이렇다.

"군대는 하루라도 빨리가는 것이 좋다."

"나이들어 군대가면 자기보다 어린 놈 명령,갈굼 들어야 한다."

거기에 이 말까지 덧붙이는 사람이라면 대한민국의 표준적인 '어른'이라고 봐도 좋다.

"기왕이면 빡세게 다녀오는 것도 좋아. 군대 갔다오면 철들잖아. 어른되서 나오거든."

틀림없이 군대갔다와서 '어른'되어 나온 경험이 묻어난 진심어린 충고일게다.


그러나 내 생각은 다르다.


군대는 폭력기관이며, 계급문화가 철저한 조직이다.

명령에 순응하는 것이 선이며 상급자의 명령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용납되지 않는다.

애초에 비판적사고의 필요성은 전무하다시피하다. 까라면 까는게 군대다.


군대에서 배우는 것에는 물론 사회에서 도움이 되는 기술적인 면도 많이 있다.

삽질이라던가, 삽질이라던가, 삽질이라던가. 

또 우리 한국사회에서 중요한 다음과 같은 행동요령을 숙지하게 된다.


-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간다.

- 빽의 중요성과 빽 사이의 서열 알기 or 줄의 중요성

- 상관 눈치보는 법과 요령껏 게으름 부리는 법

- 남의 일과 내 일, 업무 미루는 법

- 중간 관리자가 할 수 있는 삥땅치는 요령

- 옳고 그름보다 짬밥이 중요


등등 열거하면 끝이 없으나, 병영문화가 뿌리깊은 한국사회를 살아가는데 있어서 하나같이 유용한 경험을 쌓게된다.


이게 '어른'이 된다는 본질이다. 그리고 그런 '어른'을 꼰대라고 부른다.

20대 초반은 인생에서 가장 영기발랄하지만, 자신의 가치관이 명확히 정립된 나이라고 하기는 힘들며 그만큼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는 나이다. 어찌보면 사회에 첫 발을 내딪는 순간이 군입대라고 할 수 있는데, 거기서 배우는 것이 평생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래서 한국사회가 병영문화가 뿌리깊다. 나는 이런 사회문화는 점차 사라져야한다고 본다.


내 생각은 이렇다. 군대에 빨리가고 늦게가고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바람직한 군생활과 바람직한 사회생활을 자기나름대로 판별할 수 있을 정도로 성숙하다면, 군대를 가도 부정적인 문화에 큰 영향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막 피어나려는 개성과 정신을 가진 희디 흰 백지같은 젊은이가 군대라는 틀에 들어가서 '어른'이 되어 나오는 것은 말리고 싶다. 국방의 의무는 다해야겠지만, 굳이 인간이 들어가서 군인이 되어 나올 필요는 없지 않겠는가? 자신의 가치관이 어느정도 형성된 이후에 가면 더 훌륭한 인재가 될 사람은 좀 천천히 가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래도 빨리 가야겠다면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가면 좋겠다. 군대에서 갈굼당하고 욕을 먹는 것은 군대문화 탓이니 본인의 자존감에 상처받지 않기를.


 <삼국지 후주전> 후주(유선:유비의 아들)는 어진 재상(제갈량)에게 일을 맡길 때는 순리지군(循理之君-도리를 따르는 군주)이었으나 엄수(閹豎-환관)에게 미혹되자 혼암지후(昏闇之后-우매한 군주)였다. 전(傳)에서 이르길 “흰색 실은 일정한 색이 없고 오직 물들여지기에 달려있다.”고 했으니 확실히 그러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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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쇄횡강(鐵鎖橫江)

기타 2012. 6. 24. 10:47 Posted by 闖

요즘 할머니께서 반찬 가짓수를 점점 늘리다 급기야 다 먹지도 못하고 쉬어서 버리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반찬이 너무 많으니 좀 줄이시라 해도, 그러마하시고는 여전하다.

 

방법을 바꾸어 요사이 입맛이 없다(그러니 너무 음식을 많이 하지 마시라)고 말씀드렸더니

 

오늘 아침에는 아주 9첩반상을 차려주셨다.

 

된장국에 김치는기본이요 갖가지 비빔나물과 부침개, 장조림, 새우볶음...

 

아마 할머니께서는 손자가 입맛이 없으니 더 솜씨를 부리신게다.

 

맛있게 다 먹어치운다면 흐뭇해서 더 반찬을 늘리실것이니

 

맛있게 먹을 수도, 입맛이 없다고 적당히 먹을 수도 없는 난처한 지경에 빠지고 말았다.

 

문득 자기집 밥상의 수요와 공급도 제대로 해결 못하면서

 

경제학을 한답시고 거들먹거린 내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어디 묘안이 없을까?

개인, 사회. 그 용서의 방법

기타 2011. 12. 30. 11:02 Posted by 闖

김근태. 그의 죽음에 한숨인지, 恨숨인지 모를 하얀 구름을 토해내며 이 글을 씁니다.
하고 싶은 말은 많은데 잘 정리될지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되도록 짧게 쓰려고 하지만 혼란한 머리로 논리를 전개하려면 중언부언할 수 밖에...

한 인간이 죄를 용서하는데는 무엇이 필요할까요?
혹자는 아무것도 필요없다...고 할지 모르지만 전 '최소한' 죄에 대한 인정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애초에 죄가 없다는데 뭘 용서하고 말고 할 것이 없잖습니까?
김근태가 워낙 훌륭한 분이라 이근안을 용서해줬는데,
김근태가 용서한 것은 감옥안에서 죄를 인정하는 이근안이었을 것입니다.
여전히 고문실에서 기세등등한 이근안이었다면 김근태가 용서할 필요가 없죠.
덧붙이자면 가짜목사질 하면서 자기미화를 하는 이근안도요.
김근태가 죄를 인정한 이근안을 용서한 것은 인간적으로 훌륭한 일입니다.

한 사회가 죄를 용서하는데는 무엇이 필요할까요?
이 질문의 답은 불행히도 인간과 달리 사회는 맺고 풀고 할 감정이 없기 때문에, 용서라는 것은 없습니다.
대신 죄라는 사실에 대해서 법적인 책임을 지고나면 청산 됩니다. 
그렇기에 죄에 상응하는 벌을 받았는가가 한 사회가 죄를 용서하는 기준이 될 것입니다.
이것이 도덕적 책임 같은 것을 따지지 않은 최소한의 기준입니다.

이근안, 그가 속한 집단. 그들의 죄.
전두환도, 노태우도 법정에 섰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벌을 받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기계적으로 말하면, 아직 벌을 받는 중입니다.
아직 추징금을 완납하지 않았으니까요.
게다가 여전히 새로운 죄를 짓고 있습니다.
부정하게 쌓은 재산으로 떵떵거리며 살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사실을 왜곡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상응하는 벌을 받았으니 과거가 청산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까?

그러나 우리 사회는 진작에 그들을 용서, 이니 용인했습니다. 면죄부를 팔았습니다. 너무나도 값싸게.
우리 사회가 그럼 김근태가 한 용서처럼 훌륭한 일을 한 것일까요?
물론 아닙니다. 한 인간이 죄를 용서하는 것은 훌륭한 일이지만,
사회가 죄를 용인하는 것은 무책임한 일입니다.
우리 사회는 무책임 할 뿐 아니라, 저 군사독재의 원흉들이 계속 죄를 짓는 것을 방조하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 사회가 짓는 방조죄입니다.

김근태가 이근안을 용서한 것처럼, 우리 사회도 그 일당들을 '용서'합시다.
예전의 죄 뿐 아니라, 지금 계속해서 짓고있는 죄까지도요.
절대 용인해서는 안됩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영원히 용서받을 수 없을 것입니다.


 


[의견]동해 표기 문제

기타 2011. 7. 23. 12:17 Posted by 闖
이 문제 볼 때마다 역사학자 이이화 선생님의 주장이 생각납니다.

[일본해라는 명칭은 일본 중심적이고 동해라는 명칭은 한국 중심적이라서
한일 양국이 타협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황해처럼 동해도 청해(靑海)로 부른다면 좋지 않겠는가?]

대략 위와 같은 논지인데요. 제 생각에도 이게 옳은 것 같습니다.
황해라는 명칭은 황하가 흘러들어가서 누른 바다가 되니까 황해,
동해는 물이 깊고 푸르니 청해, 영어로는 blue sea 정도 되겠는데요.
괜히 한일 양국에 감정 상할 것 없이 자국에서 통칭으로 동해든 일본해든 부르고
정식 명칭은 청해로 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11.4.30 베팍작성글>
오늘 저희 학교에서 전남대 김상봉 교수의 강연이 있어서 다녀왔습니다.

제목은 굿바이 삼성 하이 경제민주주의입니다.
강연 시작하고 한참을 말 없이 서 있다가 말을 시작하셨습니다.
개인적으로 이 조그만 거인 철학자가 무슨 말을 하려고 저렇게 뜸을 들일까 궁금해지더군요.(김상봉 교수는 매우 단신이지만 내면은 거인이지요.)
이하는 강연 내용을 메모한 걸 토대로 생각나는데로 옮긴 것입니다.(그래서 두서가 없고 엄밀하지 못합니다.)

누군가 말하기를, 예전에는 데모하기 쉬웠다.
경제성장기라 대학 시절에 공부 안하고 데모해도 되지만 요즘은 그럴 여력이 없다.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 있다.
나는 이렇게 묻고 싶다

[당신, 데모해 봤소?]

생각해보라, 개인적인 걱정이 없이 공동체에 대한 고민을 할 수 있는 그런 시대가 언제 있었던가?
데모하면 취직이 안되고 개인적인 삶은 포기해야했다.
그러나 그 때 세대가 지금보다 좋았던 점이 있다. 그것은 절대악(군사독재)이 분명히 존재했기 때문에 뭘 해야할지 분명했다.
그러나 지금은 뭐가 문제인지 너무 복잡하다.
도대체 뭐가 근본적인 문제인가?

근대 이후 인간의 사회적 삶의 의미는 공화국의 시민으로서, 그리고 (기업)노동자로서 존재한다.
누구나 시민인 동시에 노동자이다.
그러나 이 두가지가 불화한다. 공화국의 시민은 주권자지만, 노동자가 사장을 뽑는가?
표면적으로 평등한 계약관계지만 실제로 사장의 지배에 일방적으로 복종하지 않을 수 없는 노예계약이다.(해고되면 굶어야 하니까)

그래서 국가가 기업과 개인 사이에서 역할을 해 왔다. 그러나 지금 그 관계가 바뀌었다.
근대 기업과 국가는 땔래야 땔 수 없는 관계로 출발했다. 어찌보면 자본주의가 발달하고 무역로가 길어지면서 그 보호를 위해서
강한 군대가 필요해졌다. 계약관계가 발달하면서 그 계약을 보증해 줄 수 있는 법이 필요해졌다.
이걸 제공할 수 있는 것은 근대국가다.

비유하자면 국가라는 달걀에 기업은 노른자다. 국가를 양분으로 기업은 세력을 키워왔다.
마침내 기업이 국가보다 더 커졌다. 병아리가 알을 깨고 나온 셈이다.
심지어 기업화는 각종 공공영역을 넘어 대학, 그리고 마침내 종교도 기업화했다.
교회를 보라. 대형교회는 이미 기업이다. 자식에게 물려주기도 하고 사고 팔기도 한다.(교인까지 얹어서)

이것이 지금의 문제다.
삼성이 이미 국가를 넘어섰다. 이건희의 땅을 밟지 않고는 경기도를 벗어날 수 없다.
그는 온갖 불법을 저지르지만 법 위에 존재한다. 삼성밥을 먹는 사람이 공무원숫자보다 더 많다.

지금와서 왕권신수설을 생각하면 웃기는 거다. 짐은 곧 국가니라~그러니까 지배할 권리는 누구에게 받았느냐?
아버지한테, 아버지는 할아버지한테...그러다가 할아버지는...음...하나님께 받았어 이런 소리를 했다.
이건희는 왜 삼성을 지배하는가. 이병철에게 물려받아서?

소유권과 경영권은 다르다. 근대 이후에 지배할 권리는 평등한 사람 중에 위임한 대표를 뽑아서 생긴 것이다.
소유권은 돈주고 살 수 있지만 경영권은 위임받아야 생긴다.
주식회사 만들고 경영권을 위임한 것이 ceo다.
단순히 소유권만 따지더라도 이건희 일가의 지분은 얼마 안된다.
최대 주주는 바로 기관투자가(연기금)이다.
연기금은 노동자의 이월된 임금이다.

이런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간단하다. 대통령 뽑듯이 사장을 뽑으면 된다.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냐고?
300년 전에 왕을 투표로 뽑는다는 걸 상상이나 했겠느냐?
대주주가 주주의 권한을 행사해서 사장을 뽑는 건 당연하다.

생각해보라.노동자가 사장을 뽑으면, 삼성이 백혈병 걸리는 작업장을 유지하겠는가?
(이외에도 사장을 뽑을 경우 이점을 열거했는데, 기억이 잘 안나네요. 상지대의 예 등등)
민족문제도 쉽게 풀릴 수 있다. 한국 소니와 일본 소니의 노동자들이 같이 투표해서 사장을 뽑는다면 어떨까?

(중간에 독일의 이사회에는 노동자도 절반 포함되고, 일본의 재벌은 해체되서 이름만 존재하고 사장단회의를 통해서 움직인다는 것,
등등의 연결고리가 있는데 제가 매끄럽게 연결을 못시키겠네요. 이렇게 쓰고나니 영 그림 그리다가 만 것 같은데...
그래도 의미는 다 전달할 수 있도록 노력했습니다.ㅠ)

<11.5.23 베팍작성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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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조국 교수의 '법치와 인권'  (1) 2011.07.23

[강연]조국 교수의 '법치와 인권'

기타 2011. 7. 23. 12:10 Posted by 闖

어제 저희 학교에 왔길래 평소에 관심있던 분이라 잽싸게 갔습니다.(시간이 없어서 질문토론 하지도 못하고 나왔습니다만)

정말 말도 잘하고 법학자답게 명쾌하더군요. 외모도 물론 대단히 호감형이고...포장만 잘 하면 크게 키울 수 있을 인물로 보입니다.

제 나름대로 강연을 요약한 것인데요, 조국교수의 ppt를 많이 참고했습니다.

주제 : 법치와 인권
- 법치의 바탕에는 인권이 있다. 
- 법이라고 해서 무조건 옳은가? 법의 실질과 정당성, 내용을 따져봐야 한다.
  70년대 장발, 미니스커트 단속은 당시의 법률에 의한 것이다. 
  국가모독죄 : 대통령을 욕하면 범죄
  긴급조치9호 : 개헌주장하면 범죄, 긴급조치를 비난해도 범죄

-87년체제 이 후 위의 법들은 사라졌지만
 모든 문제는 당대의 문제 : MB정부에 대해서 이야기 해야
-현 정부들어서 '과잉범죄화'와 '표현의 자유의 위기'가 나타난다
 예)미네르바 사건 : 기소의 목적은 표현에 자유에 대한 '냉각효과(자기검열 등을 말함)' 노린 것. 
-집회시위의 자유
 촛불시위참가자 기소 시작 : 박재영 판사 위헌제청 (당시 보수신문은 좌빨판사라 맹공했으나 이 판사는 보수기독교신자)
 2009년 집시법의 헌법불일치 결정 : 선진국 중 프랑스와 러시아 만이 야간집회를 금지하고 있으나 이 것은 밤 11,12시 쯤이지 일몰직후가 아님.
                                                    한국처럼 일몰 직후면 사실 상 회사원들은 시위하지 말라는 법.
 정치학의 기본 "광장민주주의" :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를 극복하는 것이 핵심. 대표자 감시, 통제의 장치
-언론,출판, 집회, 시위의 자유
 언론, 출판의 자유는 언론, 출판매체를 이용할 수 있는 사람의 자유. 집회 시위는 보통 사람들도 활용하기 쉽다.
 유산자의 자유(언론,출판), 무산자의 자유(집회,시위)로도 볼 수 있는데 이런 점 때문에 집회시위의 자유를 명확히 보장한 것
-비판 언론에 대한 형사처벌시도
 예)PD수첩의 부분적 오류 : 사과, 정정 정도의 제제가 맞음.
     그래서 PD수첩 기소명령을 받은 임수빈 서울지검형사2부장은 무죄라고 생각하고 사직(이 검사는 공안검사 출신임, 절대 좌파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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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치는 합법성 외에 정당성을 요구한다.
 법치는 일정한 도덕적 요청, 정의의 요청을 충족해야(법철학자)
 무전유죄유전무죄(지강헌)
 법이 있어 다행이란 생각이 들어야 법치다(김영란 대법관)
 좌우의 문제가 아니라 상식과 수준의 문제이다.
 재임 중 중립적이라 생각했던 판결이 나중에 보니 강자에게 기울어진 판결이었고,
 재임 중 약자에게 유리한 판결이 나중에 보니 중립적이었다.(벤자민 N. 카도조. 미국 전 대법관. 법은 강자가 만든 것이라며)

-소크라테스는 악법도 법이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일제시대 일법학자가 꾸며낸것)

<10.12.16 베팍작성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