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유명한 상을 받아 기삿거리가 됐었던 [채식주의자]라는 소설을 읽었다. 평소의 내 취향이라면 제목을 흘깃보고 지나치거나 한가하다면 첫문단 정도 읽고 내려놓았거나, 낯선 친척의 집에 갔을 때 서재 테이블에 놓여 있다면 누군가 부르러 올 때까지 읽었을 가능성이 있는 그런 정도의 제목이었다. 순수문학을 읽은 기억은 대학시절로 거슬러 올라가야 할 정도인 내가 채식주의자를 읽게 된 것은 마침 인터넷서점에서 마일리지 소멸을 알리는 메일이 도착했기 때문이고 최근 딱히 흥미를 끄는 책이 없었기에 에라이 그럴 것이면 좀 유명한 걸 읽어보자 하는 기분이었다. 전자책으로 결제를 하고 한시간정도 걸려 다 읽었을 만큼 꽤 짧은 소설이었고, 중간에 내팽겨치지 않고 끝까지 읽을만큼 꽤 흡입력이 있었다.
독자에게 등장인물의 내면을 얼마나 잘 보여주느냐가 좋은 작품의 기준이라고 한다면 채식주의자는 분명이 좋은 작품이다. 애초에 이런 문학작품을 읽고 작가가 창조한, 그러나 현실에 있을 법한 인물의 내면을 엿보기 좋아하는 사람의 취향을 그대로 파고든 작품이다. 특히 인간이 마음 속에 가지고 있는 응어리 - 작가의 표현을 빌자면 검질긴-그 응어리를 잘 묘사했다. 특히 1부에 자신의 응어리조차 관심이 없는, 전형적인 한국중년남성의 시선으로 아내의 응어리를 바라보는 서술은 일품이었다. 오히려 중후반부의 상세한 내면묘사가 거슬릴 정도로 1부의 묘사는 담백하고 독자로 하여금 스스로 생각하게 하는, 군더더기가 없이 깔끔했다.중후반부는 내면묘사가 너무 화려해서 아쉬운 맛이 들었다.
작품 전체의 내용과 주제의식을 생각해 본다면, 제목은 채식주의자 보다는 [몽고반점]쪽이 좋지 않았을까? 작가가 제목을 고른 이유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내가 미숙한 탓이겠지만, 인생의 무게를 짊어지고 사는 성인들의 가면이 부서지고 자신의 검질긴 응어리에 짓눌리는 것을 보여주는 제목으로는 몽고반점이 더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인 취향상, 어떤 이야기(物語)로써의 흥미는 떨어지기에 두 번 읽지는 않겠지만, 작가가 등장인물을 통해 자신의 응어리를 보여주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라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이다. 물론 그 재미는 검질긴 류의 재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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